나의문화유산답사기

20260408#제396차(20260328)전남무안:승달산 법천사,목우암기행(3.끝).

옛그늘 2026. 4. 12. 15:51
20260408#제396차(20260328)전남무안:승달산 법천사,목우암기행(3.끝).달산저수지 주차장 앞에서 내려 법천사와 목우암을 답사하기 위해 2km 둘레길을 걸었다. 전라남도는 전체적으로 보면 불교 보다는 기독교가 우세한 지역이다. 목우암안내판 부근에 현호색이 청아한 모습으로 피어 반겨주었다. 현호색은 봄에 피는 작은 들꽃으로,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오두막 인근에도 자주 보인다.현호색 한약 이름에서 유래 되었다. 중국에서 현호색의 덩이뿌리를 약재로 사용했는데, 이것을 “현호색”이라 불렀다. 오른쪽에는 달산저수지, 왼쪽에는 승달산이있다. 저수지 끝자락 가림길에서 법천사 석장승 2기가 반겨 주었다.

장승은 마을이나 성문, 사찰 등의 입구에 세워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잡위, 액, 살 등 부정한 것을 막아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했다. 법천사 석장승은 절 입구에 세워져 재액과 잡귀를 막는 수문장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절의 경계를 표시하여 절 근처에서 나무 등을 채취하는 것으로 막았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 된다. 무속과 불교가 어우러진 신앙석상이다. 법천사 석장승에는 장승 밑에 돌멩이를 쌓아 올리면 집안에 평안이 온다는 이야기, 동네 부인들이 아들을 얻으려고 장승에 고사를 지내고 코를 떼어다 갈아서 물에 타 마셨다는 이야기, 부인의 배를 장승의 배에다 맞추어서 튼튼한 아들을 낳기를 바랐다는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법천사는 서기725년 (신라 선덕왕 24) 서아시아 금지국에서 온 정명이 창건했으나 1030년에 불에 탄 뒤 고려후기 원나라 임천사에서 온 원명이 중창했다고 전한다. 1592년 (조선 25) 임진왜란 때 불이나서 불상 등을 산내 암자 목우암으로 옮겼다. 폐사지로 남아 있었으나 근래 중창 된 것으로 여겨진다. 법천사를 둘러보고 목을 축이고 그림자가 내리는 오솔길을 따라 목우암으로 향했다. 암자입구에 상수도를 올려주는 작은 배수장이 있었다. 정수장이 있어 수도물이 공급되고 있었다.

법천사에서 800m거리에 있는 목우암은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서역 금지국에서 온 정명 스님이 세운 암자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고려 의종 연간(1131~1162) 중국 임천사의 승려 원명이 고쳐 세웠다고 한다.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원명 스님이 꿈을 꾸었는데, 백운산에 있는 총지사에서 소가 한 마리 나와 이 암자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 잠에서 깨어난 스님이 이를 이상히 여겨 암자에 가보니 바위에 소 발자국 흔적이 있었다. 이 발자국을 계속 따라와 절을 지어 이름을 목우암이라 했다. 한편으로 원명 스님이 풀을 엮어 목우암을 지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암자에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과 석등이 있었다. 암자입구에는 조선시대 유행한 석종형 승탑이 절의 내력을 말하고 있었다. 호젓한 산길을 내려와 귀로 버스에 올랐다. 고마운 하루였다.(끝)
법천사 목우암 가는 길
법천사 석장승
법천사 석장승
법천사 목우암 가는 길
법천사 전경
법천사 대웅전
목우암 가는 길
목우암 승탑군
목우암 아미타여래좌상
목우암 전경
목우암 석종형 승탑군
현호색
법천사 석장승
법천사 석장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