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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1#서울: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장[경천사 십층석탑]기행4

옛그늘 2026. 3. 15. 12:03
20260311#서울: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장[경천사 십층석탑]기행4. 특별전 전시관을 둘러보고 상설전시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에 서있는 높이13.5m의 대리석 국보 경천사 십층석탑을 찾았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탑의 몸돌에 새겨진 불상을 명확하게 볼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대화엄 경천사에서 석탑은 1348년(충목왕 4) 3월 건립되었다.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중연리 부소산에 있었다. 『고려사』기록에 따르면 경천사는 고려 왕실의 기일에 종종 추모제를 지냈던 곳으로 왕실의 왕래가 잦았던 사찰이다. 경천사가 폐사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20세기 초에 폐사되어 석탑만 남아 있었다는 자료가 있다. 석탑의 1층 탑신석 상방에는 건립 연대와 발원자, 그리고 조성배경을 알려주는 명문이 남아있다.

발원자는 대시주 중대광 진녕부원군 강융, 대시주 원사 고룡봉, 대화주 성공, 시주 법산인 육이였다. 이들은 원 황실 및 고려 왕실의 안녕과 국태민안을 기원하고 불법이 빛나고 석탑 건립의 공덕으로 일체 중생이 모두 성불하게 되기를 기원했다. 강융은 원래는 관노 출신으로 충선왕의 측근이 되어 공을 세운 인물이며, 그의 딸은 원의 승상 탈탈의 애첩이 되어 권세를 누렸다. 고룡봉은 고려 환관으로 원에 가서 황제의 신임을 얻어 출세한 인물이다. 그는 충혜왕 대에 공녀로 간 기자오의 딸이자 기철의 여동생을 원의 황제인 순제에게 선보여 황후에 오르게 한 인물이다. 자정원사로 봉해졌는데 자정원은 기황후의 부속관청이었다. 그는 고려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이처럼 석탑 발원자의 면모를 보면 친원 세력이 석탑 건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음을 알수 있다.

발원자의 성격 때문인지 공교롭게도 경천사 석탑의 형태는 기존의 간결한 전통적인 석탑의 외형과는 매우 다르다. 석탑의 기단부와 탑신석 1층에서 3층까지의 평면은 소위 한자의 아(亞)자와 같은 형태로, 사면이 돌출되어 있다. 1907년 일본으로 무단 반출 되었다. 결국 계속된 반환 여론에 1918년 11월 15일 석탑은 국내로 돌아와 1919년 박물관에 귀속 되었다. 석탑의 부재를 수리하고 10년 동안 보존 처리 하여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재개관에 맞추어 현재의 전시실에서 재조립되었다. 100여 년 만에야 비로소 경천사 10층 석탑의 그 웅장한 위용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벅찼다. 문화유산은 내면에 가려진 역사를 알고 오면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경천사 10층석탑
경천사 10층석탑
경천사 10층석탑
경천사 10층석탑
경천사 10층석탑
경천사 10층석탑
경천사 10층석탑
경천사 10층석탑
경천사 10층석탑 상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