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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 가회면 함방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재실인 구음재. 선조 8년(1575년)에 세워 순조 10년(1810년)에 다시 지어졌다.
도천재 화강암으로 영암사 터를 병풍으로 두른 듯 아니면 광배처럼 포근히 안고 있는 모산재와 작별하고 발걸음을 들판을 따라 가회면으로 재촉하였다. 경칩과 함께 오는 봄은 도회지에서 먼저 만난 것이 아니라 농촌 들판에서 만났다. 경칩은 글자 그대로 땅 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겨울잠 자던 개구리도 나오고, 동삼 석달 땅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벌레도 잠에서 깨어난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꽁꽁 얼어있던 얼음장이 녹아 대지를 뚫고 솟아오르는 생명의 기운들이 경이롭다. 차창을 열면 찬바람이 귓전을 스쳐가지만 들판의 보리밭은 녹색 생명으로 기운이 넘쳐난다. 이 땅의 농부들은 경제적 이해타산은 미루어두고 마늘밭을 가꾸고 퇴비를 내며 농사 준비가 한창이다. '농자 천하지 대본'이라 했던가! 봄은 농촌에서부터 시작된다. 씨 뿌리는 수고가 없으면 결실의 가을에 거둘 것이 없듯, 경칩 때부터 부지런히 서두르고 씨 뿌려야 풍요로운 가을을 맞을 수 있다. 항상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없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 도천재·백련사 늘 영암사지로만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유교문화재를 찾아 나섰다. 인기가 없고 유명세를 타지 않는 문화재는 찾는 것도 어렵지만 관리도 허술하다. 도천재는 합천군 가회면 도탄리 새터 마을에 있었다. 합천군 삼가면 쪽에서 합천호 방향으로 지방도로 1089번(서부로)을 따라가다 커다란 ‘住湖洞門(주호동문)’ 자연석 돌비석이 있는 곳에서 도탄천을 건너간다. 콘크리트길을 따라 들판을 지나면 마을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좁은 길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요즈음 시골마을에서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다. 산뜻하게 지어진 새터 마을회관에서 주민에게 물어 어렵게 도천재를 찾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근처에 두고도 마을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고즈넉한 마을길을 걸어보니 동네 담장이 오래된 흙 기와를 버리지 않고 쌓아놓았다. 콘크리트 블록담장보다 훨씬 고향 동네 같은 운치가 있었다. 언젠가 전라남도 나주기행을 하면서 어느 가난한 자가 평생을 가꾼 꿈이라고 하는 ‘죽설헌’ 정원에 들렀다. 가난한 선비를 자청한 문인화가 박태후씨는 오래된 흙기와로 담장을 쌓아 놓았다고 하면서 약 100년쯤 지나면 문화재가 될 것이라 했다. 도천재는 1890년(고종27년) 김상락이 초은정자를 지어 후진을 양성한 학당으로 1912년에 개축했다. 워낙 깊은 산골에 있어 사람들의 발걸음이 없는 듯 고요하고 적막감이 가득해 학문을 하는 데는 적격이었다. 재실과 대문채는 마당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배치했으며 재실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기단은 자연석 허튼층쌓기로 했고 각기둥과 원기둥이 함께 사용됐다. 건물의 왼쪽에는 마루, 오른쪽에는 방이 배치돼 있다. 방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했고 투박하지만 견실하게 조각된 계자난간이 눈길을 끌었다. 계자난간에 기대어 앉아 맑은 공기와 상쾌함이 있는 자연풍광을 감상하며 망중한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마을 뒤로 가는 좁은 길에 백련사라고 하는 안내판이 있어서 찾아가 보았다. 주민의 말에 따르면 마을 사람들이 찾아가 불공을 올리는 초라한 절집이라 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크고 화려한 것에만 익숙해져 있다. 크고 화려한 절집보다 작은 산사를 찾아가 보면 자연과 아우러진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임도와 농로를 따라 오리쯤 산비탈을 따라 가니 전각과 요사채로 보이는 건물이 과수원 끝자락에 있었다. 인기척이라고는 없고 절집 살림이 넉넉지 않은 듯 나무로 불을 때서 음식을 하는 화덕이 있고 돌 절구통과 농기구도 있었다. 작은 전각 앞에 있는 커다란 소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스님들이 공부하기 위해 와 있다고 했다. 파평윤씨 신도비
함방리 당산과 막돌탑 ◇ 파평윤씨 신도비·회계서당 가회면 함방리 부근에는 파평윤씨와 관련이 있는 문화재 5점이 있다. 합천군 가회면 사무소 뒤편으로 나 있는 좁은 농촌도로를 따라가다 황매산 모산재에서 발원해 흐르는 가회천을 건너면 정자나무 2그루와 금줄을 두른 막돌탑 1기가 마을지킴이처럼 정겹게 반겨준다. 막돌탑은 우리 고유의 민간 신앙이다. 당산을 만들어 돌을 올리거나 손을 모아 절을 하며 소원을 빌던 곳이다. 조상들은 마을을 만들어 모여 살며 품앗이를 하고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며 정으로 얽힌 공동체의식을 만들어 왔다. 마을이 편안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로 묶어주는 믿음이 필요했고 곧 당산이다. 마을의 신성한 장소로서 마을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던 당산은 세월이 흐르면서 없애야 할 미신으로 생각돼 정자나무는 베어지고 막돌탑은 무너져 이제는 일부 마을에만 남아 있어 보존대책이 필요하다. 들판을 따라 가면 함방리 257번지 도로변에 파평 윤씨 신도비 2기가 있다. 신도비는 죽은 이의 평생 행적을 기록해 묘 앞에 세운 비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묘비를 세우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신도비를 세우는 것이 성행했는데, 왕릉 앞에 세워졌으며, 사대부의 경우에도 생전에 세운 공로나 인품을 기록해 비석을 크게 세우는 사례가 많았다. 이 신도비는 1901년에 세워졌으며 귀부와 이수가 있다. 윤탁(1554∼1593)과 윤선(1559∼1640)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윤탁은 조선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키고, 1593년에는 진주성에 들어가 왜적을 막다가 순절했다는 기록이다. 회계서당은 신도비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적한 곳에 있다. 마당에는 봄을 기다리는 풀들이 녹색의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건물 뒤편에는 대나무 숲이 서당을 감싸고 있었다. 회계서당은 윤선의 공적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1918년에 건립됐다. 도로변 경사지형에 대문채와 서당을 일직선상에 배치하고 강당의 좌·우에 동·서재를 앉힌 ‘口’자형 배치 형식이며 정면과 측면의 일부에 담장을 둘렀다.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실의 구성은 가운데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 2칸에는 방을, 오른쪽 2칸에는 각각 방과 마루가 있으며 건물이 장대한 느낌을 준다. 마루를 따라 계자난간을 둘렀고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회계서당은 목재를 다듬고 손질하는 수법이나 마루의 구조 등에서 조선후기 건축 양식을 사용했다. 구산서당 담장 ◇ 구음재·구산서당 깊은 산속 계곡에 숨어있는 구음재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인근 골말마을 경로당에서 파평윤씨 후손 윤창근(85)옹의 안내를 받았다. 신등천에서 소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200m쯤 가니 소나무 사이로 수줍은 모습으로 반겨 주었다. 구음재는 조선 선조 8년(1575)에 세웠으며 순조 10년(1810)에 다시 지었다. 구음재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집의 구조는 ㄷ자형으로 가운데 3칸은 대청이며 동쪽은 방 2칸, 누마루 1칸으로 육영재라 하고, 서쪽은 방 2칸, 부엌 1칸으로 신추당이라 한다. 앞쪽에는 창고인 고직사와 하인들이 살았던 행랑채가 있다. 행랑채 앞에는 연못이 있어 운치를 더했다. 윤창근씨에 따르면 추담 및 구산선생의 문집책판이 구음재에 있었으나 도둑이 들어 가져가고 남은 일부 책판은 각각 후손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구산서당은 골말 경로당 후면 낮은 언덕에 있었다. 윤탁을 기리기 위해 광무 8년(1904)에 건립됐고 대문채와 서당으로만 구성돼 있는데, 뒤쪽 경사지형에 대문채와 서당을 일직선상에 배치하고 4면에 모두 높은 담장을 둘렀다. 담장이 높아 철옹성 같은 성벽을 방불케 했다. 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대청을 2칸 크기로 하고 양쪽 1칸씩 방이 있었다. 막돌로 쌓은 기단 위에 다듬은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는데 정면에만 사용했다. 지붕은 팔작지붕 형식이고 기와의 끝단은 수막새 대신 기와골 끝을 석회석으로 마감했다. (마산제일고등학교 교사·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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