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1(음1/1설날)#제322차전남강진 월출산무위사'사적' 기행4
단기4355년(임인년-호랑이해)음력1월1일설날이다. 설날 세상사는 이치의 변화를 거스르거나 순응 하는것도 쉽지 않다. 설날을 일제 잔재 구정이라고 하고, 서기2022년1월1일 새해를 신정이라고 했다. 인사 문자도 영혼없는 그림이 날아오는데 모두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이다. *원*보 편집을 하면서'2022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를 '설날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편집을 의견을 냈는데 반영 되지 않았다. 양력1월1일을 '새해'라고 했다면 음력1월1일은 '설날'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
제322차 월출산무위사 '안내지'를 만들어 나누어주고 답사기를 쓰며 보니 오류가 있었다. "무위사사적(無爲寺事蹟)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년(서기 617) 원효대사(서기 617~686)에 의해 당초 관음사로 창건되었다고 하나 명확한 근거는 없다".에서 원효대사 출생이 617년이다. 사적을 누군가 불러 준대로 적은 것이 아닌가 싶다. 사적기에 헌강왕 원년(875)도선국사(827~898)가 중창하고 갈옥사로 바꾸었다. 고려 정종원년(946)선각대사(864~917)가 3창하고....도 의문이다. 도선국사는 동리산문(곡성 태안사)에 속하고 선각대사는 가지산문(장흥 보림사)에 속했는데 사찰 소속이 짦은 기간에 바뀌는 것은 드물기 때문이다.
선각대사 형미(864~917)비문에 신라효공왕9년(905)에 왕건이 선각대사를 무위갑사에 머물도록 청했다. 그러나 위의 내용에 고려 정종원년(946)은 선각대사가 죽은지 (~917)29년이 지난 때 이므로 절을 중창 했다는 것이 잘못 기록이다. 왕건과 친했던 선각대사가 있을 때 사세가 커졌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조선태종7년(1407)각지의 명찰을 골라 고을의 자복(資福)사찰로 지정하는 가운데 천태종 자복사의 하나로 꼽혔다. 선종사찰이었던 무위사가 천태종이 되었던 것은 천태종백련사 결사와 무관하지 않다.
세종12년(1430)아마타불을 주존으로 봉안한 극락전이 지어졌고 성종7년(1476)에 현재 극락보전에 있는 아마타삼존도, 아미타여래내영도의 벽화가 그려졌다. 극락보전은 주심포식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검박하고 단정한 건물이다. 극락보전이 592년이 지났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절안을 은은하게 채우고 있다. 비탈진지세를 따라 앞쪽에 만 얕은 축대를 쌓은 기단 위에 아무 조각도 없는 주춧돌을 놓고 안정감 있는 배흘림기둥을 세웠다는 것은 아무리 칭찬을 해도 부족함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무위"를 넘어 설날 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 편안한 설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이도 한살 더했으니 이제 허둥대지 말고 조금 더 생각하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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