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그늘 광장

20241108#한절골오두막만행(809)[홍차한잔의 여유]

옛그늘 2024. 12. 12. 08:00
20241108#한절골오두막만행(809)[홍차한잔의 여유]겨울초입에 들어선 다는 입동이 어제였다. 지난 여름 예상하지 못했던 극심한 무더위에 일상이 무너졌던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오늘도 어둠은 밝음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보여주는 새벽을 맞이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면 약 배전 로스팅 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리차를 갈아내려 커피를 사발로 마시며 조간신문 2개를 읽는다. 요즘 집에서 종이신문을 돈주고 읽는다고 의아해 할지 모르지면 서로 방향과 노선이 다른 기사를 읽는 것도 즐거움이다. 아침을 먹고 다른 날 보다 오늘은 이른시각 한절골 오두막으로 향했다.

시내를 빠져나와 출근길 차량들이 줄을 잇는 한마대로를 벗어나 지방도로 1021번 성산로에 접어들었다. 안개로 흐릿한 입곡군립공원 저수지 부근 단풍잎들도 오색 꼬까옷으로 진하게 변하고 있었다. 입곡저수지 잔잔한 수면에 안개가 융단처럼 깔렸다. 저수지와 낮은산의 행복한 어울림이 안개에 묻혀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산인면과 함안면을 잇는 성산로는 한국전쟁 때 여항산 전투에서 북한군에게 패한 연합군이 후퇴하는 군사도로였다. 옛날에는 높은 고개를 깍고 깍아 지금은 낮은 고개를 넘으면 그리크지 않은 아담한 한절골 들판이다.

엇그제 집으로 가는 저녁 길에 맞은편 좁은 농로에서 촌노가 자전거 타고 오고 있었다. 거리를 두고 자동차를 세우고 자전거가 안전하게 지나가도록 비켜서 있었다. 나이 지긋한 촌노가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지나가며 연신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당연히 차량이 비켜서 주어야 하는 작은 친절 이었지만 기분이 매우 좋았다. 오늘은 종일 아궁이에 군불을 땠더니 오후 부터 방바닥이 따끈따끈 해졌다. 온화한 기운이 가득한 황토방에서'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C단조, 작품37'LP 전축에 음반을 올려 감상하며 가을의 홍차를 내렸다. 속절없이 깊어가는 가을 날의 행복한 망중한이었다.
한절골 들판 소먹이-곤포 사일리지
한절골 풍경
엇그제 촌노의 자전거를 만난 농로
한절골 풍경
한절골 들판
오두막 군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