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문화유산답사기

20240806#제374차전북임실(20240727)섬진강옥정호[옥정산장.진구사지석등(용암리석등]기행4

옛그늘 2024. 8. 10. 08:05
20240806#제374차전북임실(20240727)섬진강옥정호[옥정산장.진구사지석등(용암리석등]기행4.해설을 맡은 이완우 선생은 점심을 함께 하자고 했지만 도시락을 준비 했다고 하며 진구사지에서 만나자고 하고 떠났다. 고리 타분한 선비의 풍모가 느껴졌다. 점심을 예약한 옥정산장은 맛집으로 소문이나서 11:30분이 아니면 식사가 어렵다고 했다. 30분을 이동하여 식당에 도착하니 소문 만큼이나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별채로 이동하여 식사를 했다. 하재철.박현주선생님 부부가 맛이 있다고 했다. 이선우회원은 막걸리까지 협찬을 했다. 준비하고 기획 할때는 조금 어렵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댓글이 달리면 더 행복하겠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비가 내리는 폐사지 [진구사지]로 이동했다. 이완우 선생은 이미 답사지를 한번더 답사를 하고 있었다. 진구사지 발굴과정에서 나온 기와의 명문에서 절 이름이[진구사]라고 밝혀졌다. 비가 내려 답사를 중단하고 인근 마을 팔각정에서 폐사지를 바라보며 해설을 들었다. 현장을 아는 분이 하는 해설은 그만큼 진솔하게 다가왔다.여름날 폐사지옆 논에는 벼가 익어가고 있었다.

2007년 7월9일 경남신문에 연재했던 '우리땅 순례' 25회에서[진구사지석등]을 답사했던 글이 있었다. 그때는 [임실 용암리석등]이었다. 신문기사를 지금의 눈으로 보면 부족한 면이 많지만 원문을 답사기로 대신한다.["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관촌에서 49번 군도를 따라 들어서니. 임실군 신평면 호암리 오원천 주변 넓은 들판은 농사일을 하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해 보였다. 작은 언덕위에는 시골 작은 교회 종탑이 정겹기만 하다. 벼가 무럭무럭 자라는 들판 사이로 길을 재촉하니 마을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용암리 석등이 반겨준다. 석등의 높이는 5.18m로 우리나라에서는 큰 석등에 속한다. 가운데 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 모두 신라시대 석등의 기본 형태인 8각을 이루고 있다. 절터 발굴이 끝나고 잘 정돈된 절터에는 하얀 토끼풀 꽃이 은하수를 뿌려놓은 것처럼 꽃밭을 이루고 있었다.

임실문화원장을 지냈다는 홍동운(78)씨는 사진동호회 일행들과 석등의 사진을 찍으면서. 원래 이곳에 큰 사찰이 있었는데 스님들의 횡포가 너무 심해 나라에서 왕명에 의해 불을 질렀다고 했다. 그러나 안내판에는 절의 이름도 알지 못하고 있는 듯 지명을 따서 석등을 부르고 있었다. 여덟 면에 모두 창을 낸 것으로 보아. 호남지방 석등의 특색을 보여 주고 있다. 인근 보호각에 1900년경 약 3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어 옮겨온 2기의 좌대가 있다."] 경남신문(2007년7월9일)-심재근의 우리땅순례25회[섬진강~임실]
옥정산장 메기탕
이완우선생의 해설
임실 진구사지 석등[2024.07.27]
이원우선생의 현장 해설
진구사지 석등[2024.07.27]
임실 진구사지 석등[2024.07.27]
진구사지에 있는 비로자나불좌상[2024.0727]
중기사에 있는 팔없는 철불[2024.07.27]
2007년6월9일 우리땅 순례 취재를 하면서 만난 적성의 섬진강
현 진구사지 석등[용암리석등]2007년6월9일 우리땅 순례 취재 하면서 찍은 사진
현 진구사지 석등[용암리석등]2007년6월9일 우리땅 순례 취재 하면서 찍은 사진
현 진구사지 석등[용암리석등]2007년6월9일 우리땅 순례 취재 하면서 찍은 작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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