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문화유산답사기

20240219#제361차(20231209)전남강진:남도답사1번지[월출산 월남사지]3.

옛그늘 2024. 2. 20. 08:48
20240219#제361차(20231209)전남강진:남도답사1번지[월출산 월남사지]3. 병영면 수인관에서 점심을 먹고 성전면 월출산자락 월남사지로 갔다. 월남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임진·정유왜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고 그 뒤 복원불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17세기 중반 폐사지가 된것으로 추정한다. 월출산 남쪽 평지에 위치한 월남사지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민가들이 들어서 있었으나 지금은 철거하고 복원 작업을 하고 있었다. 건물터로 보이는 기단부와 초석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절터 안의 백제계 3층 모전석탑은 법당터의 전면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또 최근에 현 모전석탑 서측의 민가 장독대에서 석탑의 옥개석이 발견되었다. 3층석탑의 주변에서 수습된 것으로 보인다. 폐사지 유물을 볼 때 월남사지에는 원래 2기의 석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 된다. 모전석탑에서 약 150m 떨어진 곳에 월남사지석비가 있다. 이 비는 이규보가 비문을 지은 진각국사비로, 현재 비신 일부가 완전히 떨어져나간 상태이나 기단부의 귀부는 온전하게 남아 있다. 유적발굴을 하고 평탄작업을 해놓은 월남사지의 전체 규모는 상당한 면적으로 짐작 된다. 현재 외곽 담장의 흔적이 잘 남아 있는데 동서방향인 전면의 길이가 175m, 남북방향인 측면의 길이가 185m로서 총면적은 1만여평에 달하고 있다.

절집의 가람배치 형식은 전체적으로 보아 완만한 경사지를 4개의 단으로 만들고 그 단부에 축대를 쌓아 점차적으로 오르면서 각각의 단에 평평한 대지를 조성하여 건물들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좌우측으로도 5개의 단을 두어 각각의 단에 대지를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축선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건물과 다르게 배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폐사지에 서면 무거운 답답함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오로지 말하지 않는 것과 대화이다.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지누의 저서"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에 불교신문 사장 향적스님의 추천사에서 "선사들은 도 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차나한잔 하고 가라'고 일갈 할뿐이다.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백번을 일러 준들 알지 못하고, 눈앞에 가져다 보여 준들 보지 못하는데 말 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내가 얻은 가장 귀한 것은, 멈추었다는 것이다.높은 곳으로만 향하던 내가 비로소 그 몸짓을 멈출수 있었으니 그만하면 귀하디귀한 것을 얻은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이제 우리도 욕심과 탐욕의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의 강을 건너기 바라는 마음을 폐사지에서 담아본다. 아주 오래전 답사를 왔던 추억이 월남사지 빈터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월출산자락의 월남사지
복원한 월남사지
월남사지 3층 모전석탑
월남사지에 새로지은 절집 대웅보전- 참! 생뚱맞은 느낌이다
월남사지 진감국사비 받침대
진감국사비 받침대
진감국사비 받침대
진감국비 인근에 있는 빛바랜 의자...누군가 앉았을까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