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그늘 광장

② 천위遷位와 불천위不遷位

옛그늘 2015. 12. 13. 07:07


② 천위遷位와 불천위不遷位

 육체 밖에 영혼이 존재할 수 있다는 고대의 이원론적인 생각과 이를 수정하는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적인 합리성에 의한 일원론의 통일. 그러나 이러한 양자는
오랜 시간 서로 혼재되면서 완전히 정리되지 못하였다. 마치 중국문화권에서
천天이 인격천人格天에서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의리천義理天, 즉 원리적인
천으로 바뀌게 되지만 그럼에도 인격신적인 요소가 오늘날까지 잔존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천리天理나 천도天道라는 표현을 쓰는
동시에 ‘하늘이 무심타’거나 ‘하늘이 알아줄 것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교에서도 죽은 귀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후손이 기억해주는 동안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완전히 흩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존재하게 된다. 이는 죽은
조상을 단번에 끊어버리기 힘든 후손된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그래서 발생하는
것이 바로 천위遷位이다.

 귀신을 세는 단위를 ‘위位’라고 한다. 그래서 귀신이 사는 집과 같은 공간을
신위神位나 위패位牌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위패의 위치는 세월에
따라서 옮겨진다. 그래서 옮겨지는 위패라는 의미로 ‘천위’라고 하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일반적으로 4대봉사를 하는데, 이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른 것이다. 4대는 부모·조부모·증조부모·고조부모까지이며, 그 위로 올라가면
명절제사와 같은 합동제만 하고 개별제사는 올리지 않는다. 과거에는 조혼을
했기 때문에 장손과 같은 경우는 고조부모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기준하여
제정된 것이 4대봉사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즉, 후손의 기억과 상응할 때만
조상의 기운은 완전히 흩어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4대봉사와는 다른 예외도 있다. 각 집안에는 그 집안과
관련해서 중요한 업적을 남기신 분들이 계시게 마련이다. 이 분들은 위패를
옮기지 않고, 즉 한시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영구히 제사를 모신다.
이런 위패를 옮겨지지 않는 위패라고 해서 ‘불천위不遷位’라고 한다.

 왕실과 같은 경우는 국왕의 상징성에 의해서 모든 왕들을 불천위로 모신다.
덕분에 왕조가 오래 갈수록 모시는 위패 수가 증대되게 된다. 또한 동급의
왕들에 선후의 차등을 둘 수도 없다. 그 결과 종묘와 같이 평행으로 긴 건물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종묘는 동아시아 제례문화의 특수성에서 기인
하는 건물이며, 그로 인하여 가장 긴 건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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