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그늘 광장

도서관 서점

옛그늘 2015. 12. 1. 14:06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44] 도서관 서점

  •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입력 : 2015.12.01 03:00           

                 

미국에 살 때 우리 가족은 허구한 날 서점에 가서 종일 죽치곤 했다. 각자 자기 코너에서 책을 읽다가 서점 한쪽 구석 카페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어둑어둑해질 무렵에야 가장 책을 덜 좋아하는 내가 각 코너를 돌며 애걸복걸해 겨우 서점을 빠져나오기도 했다. 미처 다 못 읽은 책들을 양손 가득 사서 들고. 귀국한 후 가장 그리웠던 게 이런 서점 나들이였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아예 우리가 그런 서점을 하나 만들어 운영해보자는 꿈을 꾸기도 했다. 주변에 물어보니 대한민국에서 그런 서점은 십중팔구 망한단다.

광화문 교보문고가 도서관 서점으로 탈태했다. 뉴질랜드 카우리 소나무로 만든 길이 11.5m의 책상 두 개가 들어섰다. 무려 100명이 함께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단다. 교보문고는 1980년 교보생명 창업주 고(故) 신용호 회장이 "서울 한복판에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서점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며 종로구 종로1가 1번지에 만든 서점이다. 책을 사지도 않은 채 읽거나 베끼더라도 눈총 주지 말며 심지어 책을 훔치더라도 절대 망신 주지 말라는 다소 무리한 영업 지침에도 상당한 영업 이익을 올렸다는 보고를 받고 책을 팔아 너무 많은 이익을 남기지 말라는 지침을 덧붙였다는 일화는 지금도 씻김을 거부하는 영혼처럼 서점 안을 떠돈다.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 업계를 살려내기 위해 마련한 도서정가제가 시행 1년을 맞았다. 동네 서점들이 조금씩 기사회생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교보문고는 또한 출판사 기본 공급률을 오프라인 기준에 맞추고 어음 결제를 없애는 등 출판사와 상생 의지를 새롭게 했다. 기왕에 시작한 상생 노력 조금만 더 확실히 하자. 사람들이 읽느라 손때 묻힌 책 출판사로 떠넘기지 말자. 우리도 좀 더 성숙한 시민이 되자. 서점의 책은 절대로 침 발라 넘기지 말자. 가운데를 눌러 펼치지도 말고. 아무도 손때 묻은 책은 사려 하지 않는다. 그게 설령 자기 손때라도. 어렵게 시작한 도서관 서점이 잘 정착되기 바란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