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그늘 광장

20180213#그곳에가고싶다(15)내서의 명소- 匡勵山匡山寺.

옛그늘 2018. 2. 13. 16:41
20180213#그곳에가고싶다(15)내서의 명소- 匡勵山匡山寺. * 심재근/
내서에 뿌리를 내리고 산지 30년이 넘었다. 내 삶의 절반을 거의 내서에 살았다. 내서는 나를 키워주고 영글게 해준 제2의 고향이다. 내서읍을 흐르는 광려천은 사계절 꽃이 피고 물이 흐르는 도심의 귀한 하천이다.
[광려산 전경]
광려천은 약 7.5km로 내서읍의 중심부를 흐르는 보배 중의 귀한 보배이다. 광려천을 따라 천천히 상류로 걸어가면 발원지가 있는 광려산과 대산이 있다. 주변산세가 좋아 예부터 명사와 유학자들의 발길이 끓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유적들을 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천년고찰 광려산 광산사는 범어사의 말사로 신목마을에 있다. 마을주차장에서 보면 현판에 匡勵山匡山寺라고 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주문이 반겨준다.
[광산사 막돌탑]
광산사는 신라27대 선덕여왕, 제28대 진덕여왕 때 원효대사와 중국화상 은진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1481년 성종12년에 편찬 된 ‘동국여지승람’과 1799년 정조23년에 편찬 된‘범우고’에 사찰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사찰이다.(내서 탐방기-박재혁 저.2014.2.14.). 광산사 아랫마을 신목지 산서마을 전체가 광산사지로서 지금보다 훨씬 넓은 규모였다고 한다. 광산사는 6.25 전쟁으로 소실되어 여러 차례 중창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암 장지연선생이 1914년 광산사 중수 상량문에 ‘1742년 (영조 18)승려 빙연, 1805년(순조 5)승려 승흡에 의해 대웅전이 중건됐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전한다. 현재는 대웅전이 극락전으로 변해 있다.
[광산사 일주문]
일주문은 사찰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광산사 일주문이 그리 오랜 된 것은 아니지만 중생이 사는 세간과 깨달음의 세계인 출세간, 즉 진계(眞界)의 경계이다. 일주문을 넘어서면 신이 인간의 미욱함을 품어주는 구원의 공간이며 스님들이 자신의 정신을 깍는 구도의 현장이다. 그래서 일주문은 속세와 피안, 고통과 구원, 미망과 깨달음의 경계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상대를 존중해야 내가 존중 받을 수 있듯이 사찰을 찾는다면 자동차는 주차하고 천천히 걸어서 가보라. 예전에는 광산사 계곡에 약수터가 있었다.
[광산사 산신각]
일부이기는 하나 여름이면 계곡에서 피서를 하며 옷을 벗고 고기를 구우며 음주에 고성방가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후한무치 한 행위가 있었다. 참다못한 사찰에서 약수터를 폐쇄하고 일주문을 세워 야간에도 통제를 하고 있다. 사찰측에 대해 불만도 있겠지만 내가 부처면 상대도 부처라는 말이 있다. 그런 마음으로 사찰을 찾아야 행복한 마음을 담아 올 수 있다. 일주문에서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 보자 차를 타고 오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극락전으로 향하는 계단을 천천히 오르며 뒤를 돌아보면 문득 신목마을의 풍경이 가득 다가온다.
[광산사 극락전]
광산사 극락전에 경남유형문화재 제440호‘마산광산사목조보살좌상’이 있다. 중앙 불단 위에 아미타 삼존상을 봉안하고 있는데 좌측 대세지보살좌상이 지정 문화재이다. 보살상의 자세는 등이 완만하게 굽었고 고개를 앞으로 약간 숙인 채 결가부좌하고 있다. 수인(손모양)은 중품하생을 결하였는데 연꽃가지를 쥔 양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오른손은 가슴 위로 올리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하여 왼쪽 무릎 위에 두고 있다. 머리는 화염보주와 화문으로 장식된 보관을 쓰고, 보관 아래 머리카락은 일정한 간격으로 나누어 음각선으로 머릿결을 표현 하였으나 머리 뒷면은 결을 생략하여 밋밋하다.
[광산사 목조보살좌상]
필자가 촬영한 사진을 보면 2009년 11월15일까지 신목마을에 석종형 승탑1기와 승탑 받침대가 있었다. 2014년9월에 가보니 언제 사라졌는지 흔적도 없었고 인근 주민들도 알 길이 없다고 했다. 광산사 대웅전 인근에 석재가 있으나 신목마을에 있던 승탑과는 다르다.
[신목마을에 있던 석종형승탑]
문화재를 지키지 못한 것은 우리들의 잘못이다. 승탑은 고승들의 무덤이다. 무덤도 돈이 되면 도굴해가는 천박한 문화적 가치가 아쉽다. 도난당한 승탑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편집자 주]내서읍지 창간호 내고장 명소에 실렸던 글 임을 밝혀드립니다.
[석종형 승탑 받침대]
[승탑이 있었던 자리에는 흔적도 없이 빈터로 남아있다]